나는 안산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그래서 ‘단원 김홍도’라는 이름은 교과서에서 처음 만난 역사적 인물이라기보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자연스럽게 접해 온 익숙한 이름에 가깝다. 김홍도미술관에도 여러 차례 방문했고, 김홍도의 작품을 실제로 본 경험도 있다. 학창 시절에는 미술관 옆 공원에서 열린 백일장에 참여해 글을 쓰고 그림도 그렸다. 당시에는 그림을 자세히 분석하기보다 친구들과 공원에 모여 종이를 펼치고 무엇을 그릴지 고민했던 기억이 더 선명하다. 김홍도가 너무 익숙했기 때문인지 그의 그림 속 인물이 어디에 서 있고, 어떤 방향을 바라보며, 주변의 빈 공간이 왜 남아 있는지까지 세세하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 〈씨름〉을 다시 보면서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이 그림은 조선 사람들이 씨름하는 현장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옮긴 것일까. 아니면 김홍도가 당시 생활을 소재로 삼아 여러 요소를 골라 한 화면 안에 다시 구성한 것일까. 이 글에서는 작품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인물 배치와 공간 구성을 먼저 살펴본 뒤, 풍속화를 역사자료로 읽을 때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은 단정하기 어려운지 생각해 보려 한다. 작품의 구성을 해석한 부분은 나의 의견이며, 김홍도가 자신의 제작 의도를 같은 말로 설명했다는 뜻은 아니다.

작은 종이 안에 들어간 씨름판
김홍도의 〈씨름〉은 《단원풍속도첩》에 포함된 작품이다. 《단원풍속도첩》에는 농사, 장터, 서당, 대장간, 놀이와 휴식 등 조선 후기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 장면을 그린 풍속화 25점이 실려 있다. 〈씨름〉은 종이에 그린 세로 26.9센티미터, 가로 22.2센티미터의 비교적 작은 작품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단원풍속도첩》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그림의 가운데에는 서로 맞붙어 힘을 겨루는 씨름꾼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을 중심으로 여러 구경꾼이 화면의 위쪽과 아래쪽에 나뉘어 앉아 있다. 왼쪽에는 엿판을 멘 엿장수가 서 있고, 오른쪽 빈자리 가까이에는 벗어 놓은 신발이 보인다. 등장인물은 많지만 배경을 이루는 집이나 나무, 길, 산은 그려져 있지 않다. 씨름이 정확히 어느 마을의 어느 장소에서 벌어졌는지 알려주는 표지도 없다. 화면에는 씨름판과 그 주변에 모인 사람들만 남아 있다.
배경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풍속화를 당시 생활을 그대로 옮긴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배경이 없다는 점은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실제 씨름판 주변에는 땅과 나무, 건물이나 길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홍도는 그 모든 것을 화면에 넣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단원풍속도첩》이 배경 묘사와 채색을 줄이고, 그림의 중심이 되는 소재와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그려졌다고 설명한다. 〈씨름〉 역시 구체적인 장소를 재현하기보다 씨름꾼과 구경꾼의 움직임에 시선이 모이도록 구성돼 있다. 배경이 생략됐다는 사실만으로 김홍도가 실제 현장을 보지 않고 상상으로 그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대로 실제 씨름판의 모습을 하나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겼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화가는 종이의 크기 안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지 결정해야 한다. 김홍도는 장소를 설명하는 배경보다 씨름을 하는 사람과 바라보는 사람의 관계를 앞에 놓았다. 화면에 없는 것까지 살펴보면 이 그림이 현실의 모든 요소를 동일한 비중으로 기록한 장면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둥글게 모인 사람들이 만든 중심
두 씨름꾼은 화면 가운데 있지만, 그들만으로 그림의 중심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위쪽과 아래쪽의 구경꾼들은 씨름판을 둘러싸듯 둥글게 배치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를 원형 구도로 설명한다. 두 무리의 구경꾼 사이에 가운데 공간을 열어 두고 그 안에 씨름꾼을 넣어, 감상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승부가 벌어지는 자리로 모이게 한 것이다. 《단원풍속도첩》 가운데서도 〈씨름〉은 특히 많은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사람의 위치와 방향을 다양하게 바꾼 작품으로 설명된다. 실제 씨름 구경꾼들이 반드시 그림처럼 균형 있게 두 무리로 나뉘어 앉았다고 확인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뒤에 가려졌을 것이고, 계속 자리를 옮기거나 씨름판을 떠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씨름〉의 생동감은 실제 현장이 흥겨웠기 때문에 저절로 생긴 것만은 아니다. 어느 곳을 비우고 어느 곳에 사람을 놓을지 정한 화면 구성도 씨름판의 열기를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같은 경기를 바라보는 여러 사람
〈씨름〉 속 구경꾼들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앉은 방향과 몸의 자세가 조금씩 다르고, 얼굴도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간결한 붓질로 표현된 인물의 표정과 열띤 좌중의 분위기를 이 작품의 중요한 특징으로 설명한다. 그렇다고 그림만 보고 각 인물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정확히 확정할 수는 없다. 옷차림이나 자리를 근거로 모든 사람의 신분과 직업을 단정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다만 김홍도가 구경꾼을 모두 같은 자세로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씨름판에 모인 사람들도 화면 안에서는 서로 다른 방향과 자세를 가진 개별 인물로 표현돼 있다. 이 차이 때문에 그림은 단순한 군중의 기록보다 여러 사람이 한 장면에 함께 참여하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씨름을 하는 사람은 두 명이지만, 그 승부를 하나의 사건으로 만드는 것은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포함한 전체 장면이다.
엿장수와 신발은 왜 화면에 남았을까
왼쪽의 엿장수는 씨름을 직접 하는 사람도 아니며, 다른 구경꾼들과 달리 자리에 앉지 않고 엿판을 멘 채 서 있다. 오른쪽의 신발 역시 씨름의 결과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러나 두 요소는 화면에서 불필요한 장식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엿장수가 원형 구도를 보완하고, 오른쪽의 신발이 열린 여백을 좁혀 화면의 균형을 잡는다고 설명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엿장수와 신발이 실제 씨름판에 있었는지를 넘어, 그림 안에서 맡는 역할이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에서 우연히 보였던 요소일 수 있지만, 김홍도는 그것을 종이 위에 남길지 제외할지를 선택했다. 나는 엿장수와 신발이 씨름판의 바깥에도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본다. 사람들은 놀이를 구경하고, 누군가는 물건을 팔며, 씨름판 가까이에는 누군가 벗어 놓은 신발이 남아 있다. 다만 이것은 화면의 요소를 연결해 읽은 나의 해석이며, 김홍도가 엿장수와 신발에 정확히 같은 의미를 부여했다는 기록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풍속화를 조선 생활의 사진처럼 봐도 될까
〈씨름〉은 조선 후기의 씨름과 구경 장면이 그림에서 어떻게 표현됐는지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당시의 옷차림과 놀이, 사람들이 모인 모습도 함께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장의 그림만으로 특정한 날과 장소, 등장인물의 이름과 신분, 실제로 일어난 경기의 순서를 모두 복원할 수는 없다. 배경은 생략됐고, 인물은 화면의 중심을 만들도록 배치돼 있다. 엿장수와 신발처럼 작은 요소도 전체 구도에 맞게 자리를 차지한다. 사진 역시 촬영자가 어느 방향에서 무엇을 찍을지 선택하지만, 그림에는 화가가 대상을 옮겨 그리고 배열하는 과정이 더욱 직접적으로 개입한다. 풍속화는 현실과 관계없는 허구도 아니지만, 현실 전체를 빠짐없이 보존한 복사본도 아니다. 따라서 〈씨름〉을 역사자료로 읽을 때는 두 가지를 함께 봐야 한다. 첫째, 그림에 등장하는 놀이와 옷차림, 인물의 행동은 조선 후기 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다. 둘째, 우리가 보는 장면은 김홍도가 소재를 선택하고 화면 안에서 다시 구성한 결과다. 나는 이 두 성격을 나누기보다 함께 볼 때 〈씨름〉이 더 흥미로워진다고 생각한다. 실제 생활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조선 사람들의 모습이 친숙하게 느껴지고, 화가가 장면을 정리했기 때문에 작은 종이 안에서도 씨름판의 움직임과 분위기가 선명하게 전달된다.
내가 그렸던 그림과 김홍도의 선택
학창 시절 김홍도미술관 옆 공원에서 백일장에 참여했을 때, 나는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종이에 담지 못했다. 무엇을 중심에 놓을지 정하고, 그 주변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만 골라 그렸다. 어떤 나무는 넣었지만 다른 나무는 생략했고, 사람의 위치도 실제 모습과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당시에는 그것을 특별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종이가 한정돼 있으니 자연스럽게 일부만 그린다고 여겼다. 지금 〈씨름〉을 다시 보면서는 그림을 그린다는 일이 대상을 그대로 옮기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김홍도의 풍속화는 일상생활의 여러 장면을 소재로 삼았다. 다만 〈씨름〉이 특정한 현장을 직접 보고 그린 작품인지는 그림만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우리가 지금 보는 것은 당시 현장 전체가 아니라, 화면 안에 남겨진 사람과 움직임, 여백과 작은 물건이다. 나는 김홍도의 풍속화를 조선 사람들의 생활을 그대로 복사한 기록으로만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김홍도의 풍속화는 현실의 생활 장면을 소재로 삼았지만, 그 가운데 무엇을 보여줄지 고르고 사람의 위치와 방향을 다시 짰다. 〈씨름〉은 조선 후기의 놀이를 보여주는 역사자료인 동시에, 화가가 한 장면을 어떻게 바라보고 구성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는 〈씨름〉의 화면 구성과 내가 그림을 그렸던 경험을 연결해 내린 개인적인 해석이다. 김홍도가 직접 자신의 제작 의도를 이와 같은 문장으로 설명했다는 뜻은 아니다. 안산에서 오래 살아온 내게 단원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이름이었다. 이제는 김홍도를 조선의 생활을 기록한 화가라고만 기억하기보다, 평범한 장면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지 판단한 화가로도 보게 된다. 〈씨름〉을 다시 본 뒤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승부의 결과가 아니다. 작은 종이 안에서 사람들을 둥글게 모으고, 배경을 비우고, 엿장수와 신발까지 제자리에 놓아 하나의 씨름판을 완성한 김홍도의 선택이다.
[참고]
-국립중앙박물관, 「씨름, 《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단원풍속도첩, 김홍도」
-국립중앙박물관, 「《단원풍속도첩》」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김홍도」
-안산시, 「단원 김홍도」
이미지 출처 표기 국립중앙박물관이 공개한 〈씨름〉 이미지는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안내돼 있어 출처 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다. 김홍도, 〈씨름〉, 《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공공누리 제1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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